안녕하세요. 오늘 알아볼 인물은 티에리 에르메스가 되겠습니다.
티에리 에르메스라는 인물을 우리는 알수럭 그의 집념은 정말 아름답다를 넘어서 경이로움이 느껴지는 때가 있다.
오늘부터는 오늘날 21세기까지 패션을 지금까지 이끌어온 사람들에 대해서 살펴보자
오늘의 에르메스의 시조
아무것도 바꾸지 않기 위해서 모든 걸 바꾼다.
-에르메스 CEO 파트릭 토마-
170년 전 귀족들을 위한 마구 용품 브랜드로 시작한 에르메스는 오늘날 가장 고집이 세고 가장 높은 완성도를 가진 가장 비싼 명품 브랜드로 손꼽힌다.
에르메스는 의류, 구두, 시계, 및 향수, 테이블 웨어 등 총 14개의 라인을 선보이고 있으며 그중 가방과 스카프가 대표적이다. 특히 수년을 기다려야 살 수 있다는 에르메스의 백은 만들어지는 과정부터 다른 브랜드는 감히 따라 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엄격하고 깐깐한 과정을 거치는 것으로 유명하다
티에리 에르메스의 탄생
티에리 에르메스의 탄생은 아름다웠다.
1801년 독일 크레펠트, 여관을 운영 중이던 에르메스 가문에 한 남자아이가 태어났습니다.
티에리 에르메스의 태어나던 때에 아버지는 그리스 신과 같은 이름을 지었으니 장차 큰일을 해낼 것이다.라며 하며 축복을 하는 평화로운 날이었습니다.
당시 유럽은 수많은 전쟁을 겪어왔고 1828년에 마침내 독일에도 평화가 찾아오고 있었습니다.
이때 당시 에르메스의 가족은 종교적인 이유로 독일을 떠나 프랑스에서 망명 중이었는데 프랑스에서 자신의 꿈을 펼치고 싶었던 청년 에르메스는 고민을 하지만 당시에도 파리에 물가는 비싸서 가게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에르메스의 시작배경
당시에 자동차가 발명되기 전이 어서 프랑스 파리는 주요 교통수단이었던 말과 마차가 붐볐고 자연스레 마차와 마구 용품 제작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이때 에르메스에게 운명적인 기회가 찾아오게 됩니다.
루이 필리프 왕의 행렬을 향해 공화 당원들이 기습공격을 한 것인데 이 사건으로 파리 중심가에 수십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근처 가게의 임대료가 순식간에 바닥으로 떨어지자 파리에 가게를 열고 싶었던 에르메스는 곧바로 남은 재산으로 작은 가게를 얻었고 곧바로 마구상을 개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안장과 마차 부속품 등말과 마차에 쓰이는 섬세하고 튼튼한 마구 용품들을 만들어 공급하였습니다
에르메스의 성장 배경
그러던 중 1842년 루이 필리프 왕의 아들 오를레앙 공작이 마차에서 떨어져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마차에서 떨어진 이유를 보던 중 안장이 말을 찌르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즉 엉성하게 만든 마구로 인한 것임이 밝혀지자 사람들은 마구를 제대로 된 것을 안 쓰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튼튼한 것을 찾던 중 섬세하고 튼튼함을 늘 신경 쓰던 에르메스가 모든 가게보다 더욱 독보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1867년에 파리에서 열린 세계박람회에서 장인 정신을 인정받아 1등을 하게 되는 것도 큰 몫을 하게 됩니다. 또한 그의 아들인 샤를 에밀 에르메스 또한 1878년 또다시 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지요
에르메스의 전환점
그 이후 티에리 에르메스는 1878년에 세상을 떠나게 되자 그의 아들인 샤를 에밀은 가게를 옮길 결심을 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전 세계 왕실과 귀족들에게 마구 용품을 납품할 정도로 많은 발전을 이루며 급성장하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1902년에 샤를 에밀이 은퇴하며 두 명의 아들이 이어받는데 그중에서도 에밀 모리스를 통해 다시금 도약하는 시기를 맞이합니다.
"최초의 에르메스 백(볼리드)" 탄생
에밀 모리스는 호기심과 아이디어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당시에 1918년 1차 세계대전 당시 에르메스는 프랑스 기병대에 안장을 공급하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떼 에밀 모리스는 사업차 미국과 캐나다를 방문하는데 그곳에서 캐딜락이라는 자동차를 접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동차에 달린 지퍼를 보고 곧장 특허권을 조지 에드워드 프렌티스에게 연락해 받게 됩니다.
이것을 가방에 대고 여러 가지 실험을 해본 결과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에르메스 백의 탄생입니다.
주목해야 될 사실
에르메스의 가방이 세계 최초로 지퍼가 달린 가방을 만들었다는 것
볼리드 백의 정면에 타원형의 가죽이 덧붙여져 있다는 것, 이는 여행용 가방의 목적에 맞게 고객의 이름을 새겨주는 이름표 역할도 했다는 것입니다.
이후로 여행산업의 발전을 눈여겨보던 에밀 모리스는 마구 용품에서 여행과 생활용품으로 주요 품목을 바꾸기로 결심하고 가방, 벨트, 장갑에 이어 의복과 손목시계, 자동차 소품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를 넓혀 나갔습니다.
에르메스의 신념의 결과
에르메스의 신념의 결과는 산업이 발전하며 패션계에서도 많은 것들이 바뀌어 갔습니다.
그중에는 복제품을 쏟아내는 대량생산이 주를 이루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에르메스는
함께 땀 흘리며 일해온 장인들을 버리는 건 말이 안 된다며 이를 거절하고 대량생산 체제에 굴복하지 않고 전통적인 수작업과 소량 생산을 고집하게 됩니다.
특히 가죽 제품 제작 시 그 옛날 안장을 꿰맬 때 쓰던 독특한 박음질 법인 새들 스티칭을 그대로 사용하였는데 이는 장인들이 손으로 한 땀 한 땀 꿰매어 최고의 품질을 만들어 내는 방식은 에르메스의 가치를 더욱 높이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또한 소량이다 보니 희소성이 되어서 명품이라는 인식까지 만들어내는 결과도 낳았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에르메스의 모습
현재에도 에르메스는 발전을 거듭하면서 처음 가지던 신념을 끝까지 유지한 기업이며 가족기업으로도 유명합니다.
로고의 모양도 에르메스는 말과 마차에서 시작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말과 마차 기수가 포함된 로고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에르메스는 창시자 티에리 에르메스가 지켜오던 투철한 장인 정신을 바탕으로 그의 5대, 6대손 자손들이
루이비통을 부유한 명품 대기업(LVMH)가 손길을 뻗쳐오지만 에르메스는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자주 회사를 설립하며 대응하고 있습니다.
'패션'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패션의 역사(가브리엘 샤넬) (3) | 2024.04.13 |
---|---|
패션의 역사(살바토레 페라가모에 대하여) (2) | 2024.04.12 |
패션의 역사(구찌오 구찌에 대하여.) (0) | 2024.04.11 |
패션의 역사(토마스 버버리에 대하여.) (0) | 2024.04.10 |
패션의 역사(루이 뷔통에 대하여) (0) | 2024.04.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