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패션

패션의 역사(토마스 버버리에 대하여.)

by 자유로운 cloud 2024. 4. 10.

안녕하세요. 오늘도 패션의 역사로 알아볼 위인은 같이 보겠습니다.

바로 영국이 낳은 것은 의회 민주주의와 스카치위스키. 그리고 버버리 코트다. 라는 명언을 남길 정도인

버버리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토마스 버버리의 시작

 

토마스 버버리가 1856년 20대에 젊은 나이로 아담함 옷 가게를 운영 중에 있었다.

버버리는 유독 옷에 대한 열정이 크며 직물점에서 수습생으로 일을 배울 때에는 유독 재킷이나 코트에 관심이 많은 청년이었다. 성실한 성격과 세심한 감각으로 맞이하는 손님들에게 인상과 당시에 환경에 딱 맞는 옷을 장사하던 버버리의 가게는 늘 손님들이 붐볐다. 하지만 버버리는 늘 속에서 생각하던 것이 있었는데 모든 영국 사람들의 고민거리인 변덕스러운 날씨였다. 갑작스럽게 비가 내리면 옷이 다 젖으니 불 펀함이 컸고 이는 버버리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중 비를 맞으며 길을 가는데 많은 사람들이 비가 올 때면 레인코트를 입고 나니는데 이 레인코트가 고무로 만들어져 있어 옷이 무겁고 불편한 옷들이 많았다. 버버리는 고민을 하였다. 레인코트가 가볍다면 편할 것 같은데 좀 더 가볍고 편안하게 만들 수는 없을까?

하지만 방수가 되는 옷을 만들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아무리 밤을 새워서 일을 하여도 도통 해결 방법이 보이지 않아 맥주를 마시러 맥줏집에 들었을 때였다.

이날 도 비가 왔는데 맥줏집에 주인장이 밖에 나갔다가 들어오는데 옷이 하나도 안 젖어있었던 것이다.

궁금한 버버리는 물었다.

옷에 걸치고 있던 것이 무엇인지.

그랬더니 양치기들이 비 올 때 입는 스목 프롬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버버리는 그날로 아주 기뻐하며 연구에 돌입하기 시작하였다.

※스목 프록 이란? 18.19세기에 영국의 농부나 마부, 양치기들이 비나 눈이 올 때에 옷 위에 걸치던 코트였다.

스목 프록 소재인 개버딘 원단의 탄생

스목 프록 소재인 것을 안 버버리는 곧장 연구를 들어갔으나 쉽지만은 않았다.

다른 직물보다 튼튼하고 가볍고 물 빨래도 가능하지만 일꾼들의 작업복으로 많이 쓰였기에 디자인이 거친 것들이 많아서

일상복으로 입기에는 어울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버버리는 하나하나 살펴보던 중 스목 프록이 라넨꽈 울로 만들어진 것을 알게 되었고 셀 수도 없는 실패를 거듭한 끝에 1888년 드디어 새로운 소재의 개발에 성공을 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개버딘 원단으로 이는 스페인어로 순례자가 입는 겉옷이라는 것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개버딘은 미리 면사를 방수 처리하여 직조한 후 또 한 번 방수처리를 헤서 완벽에 가까운 방수 기능을 자랑하였고

보온력뿐만 아니라 더운 날씨에는 열기도 막아주며 심지어 이 모든 기능들을 가짐에도 무게가 가벼워서 토마스가 발견하고 개발한 개버딘은 패션계에 한 획을 그었음이 당연한 일이었다.

이후 토마스는 즉시 개버딘을 특허로 출원하였고 이후부터가 바로 작은 가게였던 버버리의 전성기가 시작되었다.

개버딘 코트의 기능이 세계적으로 알려지면서 셀 수없이 많은 주문이 밀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버버리의 유명세

버버리의 유명새는 지금부터가 시작이었다.

개버딘 코트로 인하여 이름이 알려지자 본격적으로 나만의 이름을 알리고 싶었던 버버리는 결국에
1891년 런던 웨스트엔드 하이 마켓 30번지에서 버버리 브랜드의 탄생을 알리게 되었다. 버버리의 국민적 사랑은 전쟁 중이던 영국 군들에게도 알려지게 되는데 당시 기상학 후로 비를 맞으면 입고 있던 방수복이 무거워기며 작전을 수행하는데도 어려움이 크게 따라서 좀 더 가벼운 방수복은 없을까 고민하던 차에 버버리라는 곳에서 방수성이 뛰어나고 가볍다는 옷에 소문을 듣고 전쟁에 필요한 모든 방수복을 주문하기에 이르렀고 이때 버버리가 군대를 위해 만든 군용 방수복이 바로 "타이 로겐"이라는 옷으로 오늘날의 버버리 트렌치코트의 출발이 된다.
군대조차도 버버리를 사랑하는데 하물며 국왕은 어떻겠는가.
즉시 버버리를 왕실의 지정 상인으로 지정하고 국왕을 위해 버버리 코트를 만들게 된다.

 

여기서 유명한 일화는 에드워드 7세는 코트를 입어야 할 때 내 코트를 가져와가 아닌 내 버버리를 가져오라

 할 정도로 버버리 사랑으로 유명했다.



이에 1901년에는 버버리의 로고가 만들어지는데 말을 타는 기사의 모습과 전진을 뜻하는 프로섬을 넣은 영국을 상징하는 로고가 되겠다.

버버리의 발전과 다양성

가죽세트

버버리도 발전과 다양성을 느끼는 시기가 바로 자동차였다.

자동차가 발명됨에 따라서 옷들도 다양하게 나오게 되는데 자동차를 이용하여 많은 사람들이

산이나 계곡과 바다로 스포츠나 레저를 즐기는 사람이 늘어남에 버버리는 곧바로 개버딘을 소재로 한 캠핑 장비와 등산복, 낚시복 등을 선보였고 이는 곧 스포츠 마니아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된다.

 

특히 그중에는 당시 탐험가로 활동하던 노르웨이 출신의 로열 아문센과 그의 파트너 스콧 선장이 유명한데 아문센 선장은 남극 탐험을 처음으로 버버리의 개버딘 방한복과 장비를 남극 탐험 북으로 지정하고 마침내 인류 최초로 남극을 정복하며

자신의 증거를 남기고 싶었던 아문센 선장은 버버리 텐트를 정상에 두고 오자 그때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정상에 갈 때면 버버리 텐트가 있어 많은 사람들의 눈에 더욱 각인되게 되었으며 뿐만 아니라 세계 최초로 대서양을 비행기로 횡단한 존 윌리엄 알콕 경과 휘튼 브라운 역시 버버리 옷을 입고 비행을 성공하면서 더욱 많은 사랑을 받게 된다.

하지만 이런 버버리도 실수를 하는데 초대 버버리 회장인 토마스 버버리가 세상을 떠나고도 많은 사랑을 받아왔으나
1990년대로 들어서면서 세상이 급속도로 변화하고 사람들의 취향이 다양해질 때에도 버버리는 자신들의 역사만을 믿고 아무 준비를 하지 않고 이 시대를 관망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곧이어 버버리 코트를 입고 돌아다니면 더 이상 클래식하다가 아닌 시대에 뒤떨어진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옷으로 인식이 바뀌게 되었으며 한창 유명세를 탈 때에 우후죽순으로 가맹점 계약을 맺은 가게들이 많다 보니 시중에 너무 많은 버버리를 풀어서 더 이상 고급스럽다는 이미지가 나오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버버리는 온갖 악재가 겹치면서 암흑기가 길어지자 버버리를 위기에서 구한 인물이 바로 로즈메리 브라보였다.

그녀는 곧바로 버버리 코트를 현대의 맞추어서 전부 바꾸기 시작하였는데 긴 코트를 각자의 신체에 맞게 실루엣을 살려서 만든 코트로 변형시키고 또한 수영복과 강아지 옷들도 버버리 옷들로 현대에 맞추어서 다시금 만들어내자

구매율이 급상승하게 되었고 이후 많은 연예인들이 입게 되어 제2의 전성기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