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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패션의 역사(가브리엘 샤넬)

by 자유로운 cloud 2024. 4. 13.

안녕하세요. 오늘도 패션의 역사의 인물 중 한 분, 가브리엘 샤넬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고급 브랜드의 상징이자 여성들의 로망이며 샤넬 창립자인 가브리엘 샤넬은 역사상 가장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라 할 수 있습니다. 패션의 역사는 샤넬을 전후로 한다는 말이 있을 만큼 패션사와 현대 여성상에서 그녀가 이루어낸 업적과 가치는 실로 어마어마합니다. 영원한 스테디셀러 트위드 슈트에서부터 퀼팅 백, 샤넬 넘버 5 향수까지 그녀가 창조한 수많은 아이콘은 샤넬이 탄생한 지 1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변치 않는 세기의 스타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럼 좀 더 깊숙하게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가브리엘 샤넬에 대해서

가브리엘 샤넬에 대해서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게 됩니다.

프랑스의 소뮈르에서 태어난 가브리엘 샤넬은 샤넬이 12살 때에 어머니가 병으로 숨을 거두게 되자  가난하고 어려운 환경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거기에 더해 아버지마저도 형편이 어렵다는 이유로 샤넬과 어린 여동생을 수녀원에 맡기고 떠나시게 됩니다, 이들은 아버지를 기다리며 밤에 아버지는 언제 오실까를 생각하며 늘 잠에 들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자 결국 샤넬은 수녀원에서 수녀들의 교육 속에 자라게 되며 여러 가지를 배우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일상들마저도 샤넬에게는 어렵게 되었습니다. 바로 하나뿐인 여동생이 그만 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듯 샤넬의 어린 시절은 정말 지독히도 외롭고 아픈 기억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이렇기에 성인이 된 후에도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고 싶지 않았고 사람들에게도 과거를 숨기며 때로는 거짓말도 하곤 했답니다.

그렇게 샤넬은 18세가 되던 해에는 생마리라는 의상실에서 보조 재봉사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생계유지는 어려워서 밤에는 비쉬와 몰랭에 있는 카바레에서 노래를 부르며 돈을 벌기도 했습니다. 당시 샤넬이 즐겨 부르던 코코리코 노래로 인해 손님들은 샤넬을 코코라고 불렀는데 샤넬은 그 별칭을 창부들에게 쓰는 말이라고 싫어하였습니다.

샤넬은 자신이 뚜렷한 삶의 목적이 없는 여자들과 다르다고 생각했으며 그녀는 스스로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열망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렇게 스스로의 삶의 가치관과 더불어 아름다운 외모로 수많은 상류층 남자들이 접근해 왔습니다만 모두 거절하였으나 한 남자인 에티엔 발장에 고백을 받아 그의 정부가 되기로 합니다.

당시에 샤넬은 일이 잘 안 풀려 생활고를 겪고 있었기에 이 참에 부유하게 지내자라고 생각하고 움직인 것이었죠.

그렇게 아름다운 별장에서 많은 부유층과 지내며 그들의 습관이나 문화를 배우며 상류사회로 가는 첫 문을 열게 된 것이었죠.

 

샤넬의 시작

그렇다면 샤넬의 시작은 언제부터였을까요? 샤넬이 처음 상류사회에 발을 딘딘날에 당시 혹평을 받았는데

이유는 얼굴은 예쁜데 옷차림이 촌스럽다는 이유에서 샤넬에게 파티복을 건네었지만 샤넬은 노출이 심하다며 거절하고 자기가 만들겠다고 승마복을 개량하기 시작합니다. 당시에 패션은 상류층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었기에 상류층 부인들의 스타일이 곧 패션 트렌드였고, 많은 정부들은 귀족들의 스타일을 따라 입으며 그들처럼 보이길 원했습니다.

하지만 샤넬은 남을 따라 하는 게 아닌 스스로 성공해서 저들이 자기를 따라 하길 원했기에 상류사회의 그들만의 문화를 베우며 의지를 불태우고 있었습니다. 샤넬의 패션 감각이 처음 사람들의 이목을 끈 건 샤넬이 자신이 쓸 모자를 만들면서부터였습니다. 당시에 샤넬이 그 모자를 쓰고 파티장에 갔는데 많은 부인들이 관심을 보이며 자신들의 것도 만들어 달라고 의뢰하였습니다. 이렇게 입소문이 나면서 샤넬의 모자는 상류층의 유행을 불러일으키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한 귀부인이 그러지 말고 너만의 가게를 내봐라는 제안에 고민을 하던 샤넬은 발장에게 부탁해서 가게를 내고 싶다 하니 처음에 발장은 그냥 집에서 돈 줄 테니 쉬어라며 거절하였으나 샤넬은 나를 다른 여자들처럼 만들지 말라며 자기는 성공할 거라며 발장을 설득했고 결국에 1908년 발장의 아파트 1층에서 가게를 개업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모자 디자이너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어느 날 샤넬은 인생의 또 다른 기회를 맞이하게 됩니다.

바로 카펠이라는 인물이었는데 그는 부모의 도움 없이 스스로 자수성가한 인물이기도 하였습니다.  카펠은 샤넬과 얘기를 나누며 샤넬의 의지와 성공의 갈망을 잘 이해하며 언제든지 연락하라며 연락처를 주었고 샤넬은 태어나서 자신을 이렇게 진심으로 응원해 주고 이해해 주는 사람을 처음 만나고 심지어 성공에 대한 생각도 비슷하여 자연스럽게 사랑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발장에게 한 장의 편지만을 남긴 채 카펠과 함께 하게 됩니다. 발장을 떠난 샤넬은 1910년 카펠의 후원으로 파리의 캉봉거리 21번지에 "샤넬 모드"를 오픈하면서 처음으로 파리에 디자이너로 서게 되었습니다. 모자 디자이너로 인기를 얻었던 샤넬이었기에 샤넬 모드도 처음에는 모자를 파는 것에서부터 시작이었습니다. 당시 유행하던 모자들은 진주와 꽃과 레이스 등의 많은 장식과 대단히 화려한 것들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샤넬은 이와 반대로 최소한의 장식만 달린 모자를 판매하기 시작하였고 이 모자들은 매우 빠른 속도로 많은 여성들에게 사랑을 받게 되었으며 당시에 프랑스의 유명 여배우인 가브리엘 오르지아가 샤넬의 모자의 열성팬이 되면서 샤넬은 더욱 이름을 알리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1913년 1915년에 연달아 가게를 낼 정도가 되면서 사람들은 샤넬을 인정하면서 건의를 하였는데 이제는 모자 외에 옷도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에 파리에 패션의 제왕은 폴 푸 그저께였는데 그는 상류층 여성들을 위한 이국적이고 화려한 의상으로 큰 명성을 얻고 있었습니다, 그의 디자인을 선두로 한 프랑스의 유행은 여성의 몸매를 강조하며 화려한 장식이 달린 사치스러운 드레스였습니다. 더군다나 허리를 꽉 조이는 코르셋까지 착용을 해야 했기에 활동하기가 굉장히 불편한 옷이었지만 당시의 화려함과 고급스러움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옷이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그는 값비싼 최고급 원단을 이용해 드레스를 만들었고 자신이 생각하는 드레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원단을 필요로 했기에 당연히 드레스의 가격이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스타일을 싫어하는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샤넬이었습니다. 그녀는 폴 푸아레의 옷은 사치와 허세라고 말하며 특히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화려한 드레스를 입는 것을 이해할 수없다며 중산층을 위한 실용적이고 활동적인 드레스를 만들겠다며 연구를 하였고 그녀는 당시 남성들의 운동복이나 속옷으로만 활용되던 값싼 저지 소재를 이용해 스커트의 길이도 당시 유행하던 것들과는 반대로 푹 줄이고 여성들의 몸을 조이던 코르셋까지 과감히 없애버렸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저지 원피스는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였는데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첫째, 여성복에는 전혀 쓰이지 않던 값이 저렴한 소재인 저지 활용

둘째, 여성들의 움직임을 자유롭게 하며 무릎길이로 올라간 스커트

셋째, 코르셋에서 벗어나 몸을 조이지 않고 넉넉한 라인의 드레스였습니다.

위에 세 가지는 샤넬이 최초였기에 사람들은 이를 혁명이라고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샤넬의 작품들의 영향으로 1910년과 1920년에는 샤넬이 만든 트렌드가 유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샤넬의 사랑이야기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샤넬의 사랑이야기

샤넬의 사랑이야기가 중요한 이유는 샤넬의 패션의 열정과 영감들이 그녀가 만났던 남자들에게로도 왔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샤넬은 발장을 떠나 카펠을 만나 사랑을 나누지만 세계 1차 대전이 일어나며 카펠을 떠났고 다시 돌아왔을 때는 정치를 한다는 이유로 다른 귀부인과 결혼을 하지만 결국에는 이혼을 하고 다시 샤넬과 합치게 됩니다만 얼마 못 가서 사고로 카펠이 세상을 뜨자 샤넬은 정말 슬퍼하며 세월이 흘러도 채울 길 없는 공허만 남았다며 힘든 시기를 보냅니다.

하지만 곧 이제는 일만 남았다며 더욱 일에 집중을 하며  많은 작품들을 세상에 선보이게 됩니다. 향수도 만들고 특히 장례식장에 입고 간다는 검은색옷을 새롭게 디자인으로 하여 사람들에게 많은 인기를 끌게 되죠.

샤넬은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아지자 많은 남자들도 만나는데 처칠의 친구였던 웨스트민스터 공작과도 사랑을 하고 드미트리 파블로비치  대공, 프랑스의 초현실주의 시인 피에르 르베르디,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등 많은 남자들이 있으며 샤넬의 한 이 말은 지금도 많이 회자됩니다.

-남자들이 전부 아이 같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당신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