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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패션의 역사(구찌오 구찌에 대하여.)

by 자유로운 cloud 2024. 4. 11.

안녕하세요. 오늘도 패션의 역사로 빠지지 않는 인물을 말씀드리려 합니다.

바로 이탈리아의 장인정신으로 무장한 구찌에 대해서 알아보려 합니다. 시작합니다.

구찌오 구찌의 일대기

 

구찌오 구찌를 아는가?

구찌오 구찌는 1881년 3월 26일에 아름다운 마을 피렌체에서 그 탄생을 알렸다.

하지만 유달리 이 집안의 가족들은 서로 사이가 안 좋아서 매일같이 다툼이 있었다.

그러던 중 싸움에 싫증을 느낀 구찌는 결국 집을 나오고 만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찾던 구찌는 사보이 호텔의 벨보이로 일을 하게 되었다.

호텔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오지만 그중에는 주로 상류층이 많이 오는데 구찌는 그들의 제품인 가방과 구두를 옮기면서 점점 가죽 제품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구찌는 한 번 관심이 생기기 시작하자 일하는 시간 내내 손님들의 가방이며 트렁크이며 가죽신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상류층의 취향과 문화를 익히게 되었는데 결국에는 큰 결심을 하게 되었다.

 

구찌의 시작과 끝

구찌는 시작과 끝도 화끈하였다. 그는  한번 시작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곧바로 영국을 떠나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갔다.

그가 돌아오고 한 일은 독바로 가죽 수공예 업체전문인 업체에 들어가 가죽을 다루는 법을 성실히 배우기 시작하였으며

더 나아가서 당시의 주요 교통수단이 말과 마차임을 보고 1906년에 피렌체에 자신만의 마구상을 개업을 하게 되었다.

많은 마구상들이 있지만 사람들은 구찌의 가게만을 찾게 되는데 그 이유는 그만의 성실하고 제품이 깔끔함이 가장 커서 많은 기수들과 귀족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유행은 변하는 것처럼 시대에 맞추어 승마에 대한 인기가 줄고 자전거를 타는 게 유행을 하게 되자 구찌는 고민을 하게 된다. 결국 시대에 흐름에 따라 마구상에서 가볍게 어디든지 들고 다닐 수 있는 가방가게를 열기로 마음먹고 즉시 움직이는데 이게 바로 1921년 구찌오 구찌의 본격적인 가게의 시작이었다.

그는 곧바로 자신이 일했을 때를 떠올리며 상류층의 스타일을 파악하고 곧바로 귀족들만의 제품들을 만들기 시작하는데 특히 여성들이 원하는 우아하고 귀족적인 제품들을 만들어 크게 인기를 끌게 되자 1938년에는 사업을 더욱 확장하여서 로마에 새롭게 오픈을 하고 이곳은 곳 새로운 쇼핑 명소로 부상하게 되었다.

하지만 구찌의 제품이 인기가 있으나 이건 어디까지나 이탈리아 한정이어서 국내 브랜드라는 인식을 벗어나지 못한 상황에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게 되었다.

2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많은 가죽상들이 가죽을 얻지 못하자 사업이 망하기 시작하였다. 와중에 구찌도 큰 어려움을 겪던 중 그는 획기적이 발상을 하게 되었다. 바로 왜 가죽으로만 만들어야 하나? 다른 것은 안될까?라는 고민으로 새로운 재료를 찾은 것이 바로 대나무였다. 대나무를 열을 이용하여 직전에서 동 그렇게 만든 그는 이를 가방의 손잡이로 활용하는데 

대나무를 가방에 접목한 것은 구찌가 세계 처음으로 시행한 방법이었다.

이렇게 해서 구찌의 시그니쳐 아이템이 탄생하게 되는데 그게 바로 1947년에 뱀부 백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뱀부 백은 출시가 되자마자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덩달아 구찌를 국내브랜드가 아닌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시키게 되었다.

특히 그레이스 켈리와 엘리자베스 테일러 등 수만은 셀러브리티들에게 사랑을 받았으며 이때의 시작으로 오늘날까지 뱀부 스타일은 시대에 변화에 맞추어 다양한 아이템에 적용되며 여전히 사랑받는 구찌의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또한 구찌는 말에 안장과 발판을 보고도 영감을 가져 제품을 만들었는데 이게 바로 구찌의 또 다른 아이콘인 홀스빗 장식이다. 홀스빗은 1950년대 가죽 핸드백에 처음 사용된 이후 다양한 구찌 제품에 적용되었으며 1953년에는 남성용 슈즈의 장식으로 홀스빗이 사용되었으며 많은 스타들과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며 현재까지도 구찌의 클래식 로퍼를 가장 잘 나타내는 장식으로 여겨지고 있다.

 

구찌의 변화와 현재

장식품들

구찌의 변화로는 1953년에 아이콘의 창조한 구찌오 구찌의 죽음이었다.

이후 그의 가족들이 사업을 이어가게 되었는데 그중에서도 둘째 아들이었던 알도는 더욱 우리 구찌를 알릴 방법이 없을까를 고민하던 중 미국에서 하면 이름을 널리 알릴 수 있겠다는 생각에 곧바로 첫 번째 매장을 오픈함과 그 이후에도 홍콩과 도쿄에도 매장을 오픈하면서 아시아에 진출하며 브랜드를 키웠으며 가방의 잠금장치 용도로 구찌의 대표 로고인 GG아이콘도 탄생을 하였다. 이는 구찌의 처음 이니셜에서 따온 디자인이었다.

이 로고가 출시 된 이후 많은 구찌 상품에 프린트되어 이용되기 시작하는데 전 세계 영화배우를 비롯한 각종 유명 인사들까지도 제품을 착용한 모습이 대중들에게 알려지면서 구찌는 럭셔리 아이템으로 완전히 자리를 잡게 되었다.

특히 구찌의 발명품 중 미국의 영부인이었던 케네디 대통령의 부인인 재키 케네디가 즐겨서 착용하여서 재키백이라고 불리며 큰 인기를 가진 백도 있었다. 이렇듯 유명인이 착용하여서 빛이 나는 제품들도 있으나 되려 제품이 유명해서 사람들이 찾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것은 플로라라는 제품이었다.

플로라는 당시에 한 남성이 여성에게 선물하기 요청하여 만든 제품인데 이게 큰 인기를 얻으며 귀부인들이 딸들에게 물려주며 사용할 정도로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왔다.

하지만 두 번째로 큰 변화는 바로 형제들간의 갈등이었다.

이들의 싸움은 지금도 회자되지만 너무 격하게 싸움을 해서 악명이 높았다. 매장 관리부터 기업의 주식과 재산상속에서 사사건건 싸움이 끊이질 않았고 결국에는 둘째 아들 알도는 막내였던 로돌프의 경영권을 축소시키기 위해 자신의 아들에게 향수 제품을 팔아보라 맡겼지만 아들은 무분별하게 구찌의 상품을 남발하며 구찌의 이미지를 추락시키기에 이르자 알도는 아들을 경질시키지만 아들은 복수를 한다며 자신의 아버지인 알도를 세금 탈세점으로 신고하며 아버지를 교도소에 보내는 패륜을 하게 될 정도로 구찌의 막장은 끝을 달렸으며 결국에는 구찌의 자손들의 무능한 경영으로 인하여 모든 지분을 외부에 다 주게 되며 소유권을 잃게 되었다.

하지만 이때 구찌를 구한 영웅들이 있었으니 바로 구찌의 미국 지사장을 지낸 도메니코 드 솔레였다. 그리고 거기에 한 인물이 더 있으니 1994년에 구찌에 새롭게 임명된 수석 디자이너인 톰 포드이다.

톰 포드는 곧바로 젊은 층을 집중적으로 공략을 하며 섹시하면서 도발적인 이미지를 만들게 되는데 이로 말미암아 구찌는 

다시 화려한 부활을 할 수있게 되었고 1990년에는 백화점을 운영하는 PPR그룹과 제휴를 맺어서 이제는 독립브랜드가 아닌 럭셔리한 대기업의 소속이 되었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LVMH와 더불어서 세계 명품 업계의 양대산맥으로 끊임없이 경쟁하며 발전을 하고 있다.